1. 머더미스터리 플롯은 무엇이 다른가
머더미스터리는 추리소설처럼 하나의 사건을 푸는 장르지만, 플레이어가 사건 속 인물을 직접 맡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가”만 잘 만들면 끝나지 않는다.
대략 세 가지를 같이 설계해야 한다.
- 사건 -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 정보 - 누가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가
- 이해관계 - 왜 그 사실을 말하거나 숨기는가
특히 머더미스터리는 정보 배치가 중요하다.
같은 사건이라도 A는 동기를 알고, B는 목격을 했고, C는 결정적인 문서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 비밀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식으로 나눠두면 플레이가 생긴다.
이번에 직접 만들어보면서는, 복잡한 살인 트릭보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고 왜 말하지 않는가” 를 설계하는 쪽이 훨씬 중요하게 느껴졌다.
2. 사건의 진실을 먼저 만든다
캐릭터부터 하나씩 만들기 시작하면 설정이 쉽게 꼬인다.
먼저 제작자만 알고 있는 사건의 정답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편이 좋았다.
예를 들면 다음 정도다.
21:32 범인과 피해자가 대화를 시작한다.
21:40 말다툼이 격해진다.
21:43 범인이 피해자를 밀친다.
21:43 피해자가 머리를 부딪혀 사망한다.
21:45 범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문서 한 장을 가져간다.
21:47 범인이 현장을 떠난다.여기서 중요한 건 사건 자체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실제 플레이에서는 이후에
- 왜 싸웠는가
- 범인은 왜 문서를 가져갔는가
- 누가 그 모습을 봤는가
- 목격자는 왜 그 사실을 숨기는가
가 붙으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플롯을 짤 때는 범행은 이해하기 쉽게, 주변 관계는 복잡하게 두는 쪽이 꽤 잘 맞았다.
3. 캐릭터마다 다른 ‘죄’를 준다
8명이 플레이한다고 해서 8명 모두에게 살인동기를 줄 필요는 없다.
대신 각자 숨기고 싶은 사건이나 행동이 하나씩 있으면 좋다.
A - 과거 사건의 기록을 삭제했다.
B - 진실을 알고도 침묵했다.
C - 회사를 나갈 계획을 세웠다.
D - 실제 살인범이다.
E - 경쟁사에 정보를 넘겼다.
F - 피해자를 죽이러 갔지만 이미 죽어 있었다.
G - 복수를 위해 회사에 들어왔다.
H - 자신의 정체 자체가 비밀이다.이렇게 하면 모두 수상하지만 수상한 이유는 다르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뭔가 숨기는 건 맞는데, 그게 살인 때문인가?
를 계속 판단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진짜 비밀이 가장 좋은 레드헤링이 되는 것 같다.
4. 범인의 거짓말은 단순하게
범인이 게임 내내 여러 개의 거짓말을 외워야 하면 플레이 난도가 지나치게 올라간다.
예를 들어 범인의 핵심 거짓말을 하나만 둔다.
제가 방을 나왔을 때 피해자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 대신
- 피해자와 싸운 사실
- 사건 현장에 갔던 사실
- 과거에 갈등이 있었던 사실
같은 것은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범인도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오히려 대부분 사실을 말하면서 결정적인 한 부분만 거짓말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5. 조사카드는 ‘정답 직전’까지만 준다
조사카드가 너무 직접적이면 추리가 사라진다.
“A가 범인이다.”
“B는 산업스파이다.”이런 카드는 사실상 정답지다.
반대로 지나치게 모호하면 플레이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좋은 카드의 기준을 잡아보면,
한 장만 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건 알 수 있지만, 다른 정보와 합쳐야 의미가 완성되는 정도
가 적당했다.
예를 들면:
[카드 A]
5페이지짜리 사건 재조사 문서.
1, 3, 4, 5페이지만 남아 있다.
[카드 B]
누군가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접힌 종이.
오른쪽 아래에 ‘2 / 5’라고 적혀 있다.두 장을 연결해야
이 사람이 사라진 2페이지를 가지고 있었구나.
라는 추론이 나온다.
또 조사카드는 범인을 찾는 증거만 있을 필요는 없다.
편지, 일기, 사진, 메시지처럼 캐릭터의 감정이나 관계를 이해하게 하는 카드도 같이 있어야 역할놀이가 살아난다.
6. 개인 목표는 명확하고 서로 얽히게 만든다
처음에는 개인 목표를
비밀을 지킨다. / 회사를 보호한다. / 진실을 밝힌다.
처럼 쓰기 쉬운데, 실제 게임에서는 판정 기준이 애매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태나 행동으로 바꾸는 편이 좋다.
최종 지목 대상이 당신이 아니면 +3점
게임 종료 시 A가 구속 상태가 아니면 +2점
특정 행동이 성공하면 +3점그리고 목표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플레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A는 내부 유출자를 찾아야 한다.
B는 내부 유출자로 지목되면 안 된다.
C의 증언이 있어야 과거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된다.
하지만 C가 증언하면 자기 잘못도 조사받게 된다.이렇게 하면 단순히 카드를 모으는 게임이 아니라 설득, 거래, 은폐가 생긴다.
다만 살인사건이 중심인 만큼 진범 찾기 자체도 모두에게 소량의 공통 승점을 주는 편이 자연스러웠다.
7. 마지막 행동으로 결말을 플레이하게 한다
범인 투표 직후 바로 정답을 공개하는 대신, 마지막 행동 단계를 둘 수 있다.
예를 들면:
- 증언한다 / 침묵한다
- 재심을 요청한다 / 포기한다
- 경쟁사 전송을 취소한다 / 그대로 둔다
- 내부고발을 보낸다 / 폐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쪽 선택 모두 장단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언한다
→ 과거 피해자의 명예회복 가능
→ 자신의 과실도 조사받을 수 있음
침묵한다
→ 자신은 안전
→ 과거의 잘못은 다시 묻힐 수 있음이 단계가 있으면 범인을 맞힌 뒤에도 캐릭터의 선택이 계속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머더미스터리를 단순 추리게임이 아니라 역할놀이처럼 느끼게 해주는 장치였다.
8. 타임라인으로 계속 검증한다
전체 타임라인은 플롯의 테스트 코드처럼 쓸 수 있다.
21:43 범행
21:47 목격
21:55 다른 인물이 시신 확인
22:15 공식 발견여기에 모든 캐릭터의 행동을 겹쳐놓으면
- 동시에 두 장소에 있는 인물이 없는지
- 목격이 실제로 가능한지
- 이동 시간이 충분한지
-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하지 않은지
같은 오류를 찾기 쉽다.
그래서 역할서나 카드보다 먼저 제작자용 전체 타임라인을 하나 만들어두는 것이 꽤 중요했다.
9. 사건의 전말은 다시 ‘이야기’로 보여준다
게임이 끝난 뒤에는 단순히 정답만 발표하기보다, 사건을 시간순으로 다시 보여주는 편이 좋다.
예를 들면:
사건의 전말은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1시 32분. 피해자의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모델이었다.
그녀는 다음 날 세상에 공개할 제보문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서에는 한 사람의 이름만 빠져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이름이었다.
이런 식으로 과거 사건, 범인의 동기, 범행, 증거 은닉까지 한 번에 풀어준다.
잘 만들어지면 플레이 중 봤던 카드들이 여기서 다시 연결된다.
아, 그래서 그 카드가 있었구나 하는 순간이 사건의 전말에서 연속으로 나오는 것이 목표다.
10. 정리
머더미스터리 플롯을 만들 때 대략 이런 순서가 편했다.
1. 사건의 진실
2. 전체 타임라인
3. 캐릭터별 비밀과 관계
4. 정보 분배
5. 개인 목표
6. 조사카드
7. 마지막 행동
8. 역할서
9. 사건의 전말과 에필로그처음에는 반전이나 범행 트릭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만들어보니 그보다는 정보와 이해관계를 어떻게 나누느냐가 훨씬 큰 부분을 차지했다.
사건의 정답은 하나지만, 각 플레이어가 가진 조각은 다르다.
그리고 각자 자기 사정 때문에 그 조각을 바로 내놓지 않는다.
그 조각들이 플레이 중 맞물리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가 나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머더미스터리 플롯 설계의 핵심에 가까운 것 같다.